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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6 | 226 | 이 여름의 진짜 승부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갈리고 있었다. 독일의 대형함들이 부두에 묶여 있던 석 달 동안, 란츠 개혁의 열매들이 차례로 바다에 나온 것이다. 표준 화물선의 양산이 궤도에 오르며 6월부터 신규 건조 톤수가 처음으로 월간 손실 톤수를 넘어섰고, 상설 호위전대는 편성표 속 유령 부대에서 실체를 갖춘 전력으로 바뀌어 갔다. 호위 전용으로 설계된 소형 항모 1번함이 취역해 선단 상공에 처음으로 상시 항공 엄호가 제공되기 시작한 것도 8월의 일이다. 겨울의 뤼첸스가 헤집고 다녔던 그 바다는 반년 만에 전혀 다른 바다가 되어 있었다. 독일 해군도 이를 모르지 않았으나, 수뇌부가 매달릴 수 있는 희망은 이제 하나뿐이었다. 수리가 끝나 가는 두 척의 고속전함, 그리고 그들이 한 번 더 기적을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였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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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7 | 227 | === 중순양함대의 마지막 출격 (1941년 9월~10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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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 | 가을이 왔을 때, 독일 해군 수뇌부의 계산은 어긋나 있었다. 여름의 희망이었던 고속전함 2척은 7월의 폭격 피해로 수리 완료가 11월 이후로 밀린 상태였고, 랜드 내해의 호송 체계가 나날이 두꺼워지는 것을 부두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에리히 레더]]는 차선책을 택했다. 노르웨이 방면에 남아 있던 중순양함 전력을 투입해 통상파괴전의 불씨를 살려 둔다는 것이었다. 명분은 전과가 아니라 존재였다. 습격함이 한 척이라도 바다에 나가 있는 한 연합군은 선단마다 중호위를 붙여야 하고, 그 부담만으로도 출격의 값어치는 한다는 논리였다. 훗날 공개된 작전 명령서의 단서 조항이 이 출격의 성격을 요약한다. "우세한 적과의 교전은 회피하라. 함의 상실은 어떠한 전과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지난겨울 뤼첸스의 원칙이, 이제는 자신감이 아니라 궁핍의 언어로 반복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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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 | 9월의 첫 출격은 중순양함 지크프리트(KMS Siegfried)가 맡았다. 지크프리트는 초계선의 틈을 찾아 사흘을 배회한 끝에 랜드 내해 진입에 성공, [[9월 21일]] 새벽 30여 척 규모의 호송선단을 포착했다. 그러나 그날 지크프리트가 마주한 것은 지난겨울의 그 바다가 아니었다. 선단 주위에는 구축함과 초계함으로 짜인 상설 호위전대가 교범대로 진형을 갖추고 있었고, 호위 지휘관은 접근하는 함영을 확인하자마자 선단을 스콜 쪽으로 물리고 구축함들을 어뢰 위협 침로에 올렸다. 지크프리트는 세 차례 접근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연막과 어뢰 부채꼴에 가로막혀 회피 기동을 강요당했고, 두 시간의 승강이 끝에 상선 1척 격파라는 초라한 전과만 안은 채 이탈했다. 함의 상실을 두려워하는 습격함과, 함을 버릴 각오가 된 호위함이 만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준 교과서적 방어전이었다. 그리고 진짜 계산서는 귀로에서 날아왔다. 교전 보고로 위치가 특정된 지크프리트를 순양함 3척이 노르웨이로 향하는 길목에서 요격한 것이다. [[9월 23일]] 오전의 포격전에서 지크프리트는 기관에 명중탄을 얻어 속력을 잃었고, 정오 무렵 뇌격 처분되었다. 구조된 승조원은 800여 명. 함장은 함과 함께 가라앉는 쪽을 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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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 | 지크프리트의 상실은 수뇌부를 주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나, 10월의 두 번째 출격은 오히려 규모를 키워 강행되었다. 이번에는 롤란트(KMS Roland)와 하겐(KMS Hagen) 2척 편성으로, 한 척이 호위를 붙들고 있는 동안 다른 한 척이 선단을 때린다는 협격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사냥터에 도착하기도 전에 끝났다. [[10월 14일]] 밤, 노르웨이 연안을 남하하던 전대가 매복 중이던 루이나 잠수함의 뇌격을 받은 것이다. 어뢰 2발을 얻어맞은 하겐은 함수가 절반쯤 뜯겨 나간 채 표류하다 이튿날 아침 스스로 가라앉았고, 롤란트는 회피 기동 중 아군 기뢰 구역 언저리를 스치며 추진축에 손상을 입어 예인되다시피 귀항했다. 단 한 발의 함포도 쏘아 보지 못한 출격이었다. 보급망 소탕과 항공 정찰, 암호 해독과 잠수함 초계가 겹겹이 짜인 그물 안에서, 이제 독일 수상함은 사냥터에 도달하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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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4 | 한 달 사이 중순양함 2척의 상실은 독일 해군 내부의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무게였다. 유보트 병과는 "수상함대에 들어가는 강철과 인력을 잠수함 100척으로 바꾸라"는 해묵은 주장을 다시 꺼내 들었고, 이번에는 반박할 전과가 레더의 손에 남아 있지 않았다. 총통이 "대형함은 떠다니는 고철"이라는 유명한 폭언과 함께 수상함대 해체까지 거론했다는 사실이 전후 기록으로 확인되는데, 레더는 사임 의사까지 내비치며 이를 간신히 막아냈다. 그 방어의 논거가 마지막 남은 패, 즉 수리를 마쳐 가는 고속전함 2척이었다. 두 척이 건재한 한 연합군은 랜드 내해 북부에 주력함을 묶어 둘 수밖에 없으며, 기회가 오면 이들이 수상함대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리라는 것이었다. 결국 총통은 조건부로 물러섰다. 증명하라, 겨울이 오기 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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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6 | 이렇게 해서 대서양-랜드해 전투의 마지막 무대가 마련되었다. 11월 하순, 수리를 마친 고속전함 2척과 응급 수리된 롤란트, 그리고 긁어모은 구축함들로 편성된 독일 함대에는 랜드 내해로 진입해 대규모 선단을 격멸하라는, 사실상 함대의 존폐를 건 명령이 내려진다. 함대 승조원들 사이에서는 출항 전부터 이 작전을 '마지막 항해(die letzte Fahrt)'라 부르는 자조가 돌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항해가 향하는 길목에서는, 이번에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알렉스 베렌하르트]]의 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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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 | 237 | === 랜드 내해 북부 해전과 종결 (1941년 11월 2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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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9 | 2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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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 | 239 | ==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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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 | 241 | == 영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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